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전북 고부(古阜) 출신으로 이성화의진(李成化義陣)에 참여하여 고부와 순창(淳昌)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의병장 이성화는 1908년 전북 고부에서 창의하여 고부·태인(泰仁)·순창·부안(扶安)·정읍(井邑) 등지에서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활동하였다. 그는 1908년 3월 고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였고, 6월에는 정읍, 그리고 태인·고부·순창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통해 군세를 확장하였다. 그리고 1909년 1월에는 6회, 2월에는 9회에 걸쳐 일제기관을 공격하였다. 1909년 4월 이성화의진은 신보현의진(申保鉉義陣)과 연합하여 순창군 가포곡(加布谷)일대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였고, 5월 1일 태인군 인곡면(仁谷面), 5월 19일 고부군 벌말면(伐末面), 6월 20일 고부군 우덕면 등지에서 일본 군경과 전투를 벌였다.
1909년 7월에만 일본경찰, 헌병대, 수비대를 공격한 회수가 무려 26회에 이를 정도로 세력을 떨쳤다.
김유봉은 평소 이성화가 의병 활동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1908년 음력 11월 15일 이성화의진에 참여하였다. 그 후 1908년 음력 12월 10일까지 이성화의 지휘에 따라 총 및 칼을 휴대하고 동료 의병들과 함께 순창군과 고부군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나아가 1909년 음력 2월 10일부터 2월 21일까지 이성화를 비롯한 의병 약 30명과 함께 총 및 칼을 휴대하고 고부군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김유봉은 체포된 뒤 소위 폭동죄(暴動罪)로 기소되어 1909년 7월 2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1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全州支部:1909. 7. 28)
- 受刑人名簿·全北義兵史(全北鄕土文化硏究會, 1992) 下, 52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62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