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7년 음력 12월 전북 익산(益山) 일대에서 조참봉의진(趙參奉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조참봉의 본명은 알 수 없으나 전북 임피(臨陂)에서 창의하여 여산(礪山)ㆍ익산 등지에서 소규모의 의병부대를 거느리고 활동했던 의병장이었다.
김운선은 1907년 음력 12월 상순 조참봉의진에 참여하여 그 휘하에서 의병 20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전북 여산에서 활동하였으며, 같은 달 30일에는 양순만(梁順萬) 외 6명과 함께 총기를 휴대하고 전북 익산군 무촌면(豆村面) 심암리(心岩里) 강준형(姜俊馨)의 집에서 군자금을 요구하여 엽전 1백 냥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10년 6월 29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ㆍ강도죄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르다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10. 6. 29)
- 受刑人名簿
- 폭도 체포를 위해 출장한 순사 소득 없이 귀소함(1908. 8. 15) 暴徒에 關한 編冊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793면
- 全北義兵史(全北鄕土文化硏究會, 1992) 622면
- 합장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