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음력 5월부터 전북 흥덕(興德) 등지에서 국호남의진(鞠湖南義陣)에 참여하여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국호남은 전북 부안(扶安)ㆍ고부(古阜)ㆍ흥덕 등지에서 활동했던 의병장 국치원(鞠致元)과 동일인으로 보인다. 국치원은 1909년 3월 7일 휘하 의병 30여 명을 이끌고 흥덕군 북면(北面) 후포리(後浦里) 일본인 평정덕장(平井德藏)의 집을 공격하여 금전과 군수품을 모집하였으며, 같은 해 4월 20일경 흥덕군 은곡리(隱谷里)에서 군자금 100냥을 모집하였다. 그리고 5월 30일에는 고부군 거마면(巨麻面) 평교리(平橋里)에서 일본인 대삼오랑(大森五郞)의 집을 공격하여 총 6정, 칼 1자루, 양산 1개, 탄약 70발을 군수품으로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였다.
김옥엽은 국호남의 지휘에 따라 약 20명으로 편성된 의병과 함께 흥덕 일원에서 군수품 모집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9년 8월 18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3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8. 18)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628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