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8년 11월 전북 부안(扶安)에서 김영진의진(金永鎭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의병장 김영진은 1907년 부안 일대에서 의진을 결성하였다. 1908년 10월 휘하의 서응오(徐應五)ㆍ김내서(金乃西) 등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부안군 일원에서 활동을 하다가 전사하였다. 김영진이 전사한 뒤 서응오가 의병장이 되어 의병 100여 명을 이끌고 전북 부안ㆍ고부(古阜)ㆍ무장(茂長)ㆍ순창(淳昌)ㆍ김제(金堤) 일대에서 활동하였다.
김영화는 1908년 11월 13일경부터 17일까지 김영진의진에 참여하여 20명의 의병과 함께 전북 부안군 장곡리(長谷里)ㆍ노정리(露亭里) 일원에서 활동하였다. 1909년 6월 18일부터 전북 태인(泰仁)ㆍ정읍(井邑)ㆍ흥덕(興德)ㆍ고창(高敞)ㆍ무장ㆍ고부 일원을 순찰 중이던 고부경찰서의 진압대에 고부군 성포면(聲浦面) 율치(栗峙)에서 체포되었다.
1909년 7월 23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징역 2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7. 23)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6) 제15권 92~9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615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