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5권(2003년 발간)
경기도 지평(砥平) 사람이다. 충북 제천 일대에서 의병으로 활약하였다. 김성화는 일제가 1894년 친일내각을 세우고,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등 조선의 국권을 탈취하려는 침략정책 수행을 가속화하자, 국권상실의 위기를 절감하고 1896년 유인석(柳麟錫)의 제천의진(堤川義陣)에 참여하여 포군(砲軍)으로 활동하면서 항일투쟁을 전개하였다. 제천의진은 1896년 초 경기도 지평(砥平)·강원도 원주(原州)·충북 제천(堤川)에 이르는 일대의 의병이 충청도·경상도·강원도의 3도가 접경하는 충주·단양·원주·영월·안동·문경 일대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충주성 전투 이후 제천 의진은 제천(堤川)에 집결하여 병력을 수습하였다. 이 소식을 듣고 문경의 이강년(李康秊), 영춘의 권호선(權灝善), 원주의 이인영(李麟榮) 등이 제천에 모여들었다. 그리하여 유인석 의병장은 1896년 2월 가흥에 있는 일본군의 병참기지를 공격하기로 하였다. 이에 따라 유인석 의병장은 이강년을 유격장(遊擊將)에 임명하여 홍대석(洪大錫)과 함께 가흥하게 하였다. 김성화도 이 가흥전투에 참여하여 밤낮 없이 공방전을 벌였다. 그러나 이곳은 의병의 맹공격으로도 쉽게 함락되지 않았다. 김성화는 이 가흥전투에서 교전 중 손덕화(孫德化)·김정순(金正純) 등과 함께 불행히도 전사, 순국하고 말았다. 중군장 안승우는 4월 26일 제천의 남쪽 남당촌에 의병을 집결시키고 장례를 치렀는데 이들에 대한 제문에서 "몸을 돌보지 않고 여러번 싸우다가 끝내는 가흥싸움에서 전사하였다. 아! 사람이 세상에 나매 누구인들 한번 죽지 않으리오마는 죽을 자리에서 죽는 것이 귀하도다"라고 애도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2001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倡義見聞錄·安公下沙實記大略·下沙安公乙未倡義事實(獨立運動史資料集 第1輯, 國家報勳處) 117·336·441面
- 韓末의 堤川義兵(具玩會, 집문당, 1997) 433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