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본적은 미상이나 전남 순창군(淳昌郡) 복흥면(福興面) 대각동(大覺洞) 박광서(朴光西)의 집에 거주하였다. 1909년 2월 유종여의진(柳宗汝義陣)에 가담하여 활동하였다.
유종여는 유생으로 정읍에서 동학농민항쟁에 참여하고, 1907년 11월경 창의하여 1909년 5월까지 전북 순창·태인, 전남 담양·장성·광주 등지에서 활동하였던 의병장이다. 유종여는 1908년 음력 2월말부터 전북 순창 및 장성 일대에서 부하 60명과 활동하였으며, 1908년 11월 10일부터 1909년 음력 2월 10일까지 순창·담양·광주 일대에서 장순흥(張順興) 등과 총기 20정 및 칼을 휴대한 의병 30여 명을 지휘하여 식료품·짚신 등의 군수품을 모집하였다. 1909년 5월 8일 순창군 쌍치면(雙置面) 학선리(鶴仙里) 오룡촌(五龍村)에서 전사하였으며, 묘는 정읍 구룡동(九龍洞)에 있다.
김상룡은 1909년 2월 경 전라남북도의 접경지대에서 활동하던 유종여의진에 가담하여 전북 순창(淳昌), 전남 담양(潭陽) 일원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었다. 1909년 11월 22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7년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 제1권, 737~738면
- 대한제국기 호남의병 연구(홍영기, 2005) 534면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1909. 11. 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