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2권(2016년 발간)
1909년 음력 1월 전북 태인(泰仁)ㆍ정읍(井邑) 일대에서 이성화의진(李成化義陣)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의병장 이성화는 1908년 전북 고부(高阜)에서 창의하여 고부ㆍ태인ㆍ순창(淳昌)ㆍ부안(扶安)ㆍ정읍 등지에서 100여 명의 군사를 이끌고 활동하였다. 1908년 3월 고부 6월 정읍ㆍ태인ㆍ고부ㆍ순창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09년 1월 6회, 2월에는 9회에 걸쳐 기습작전으로 일제 기관을 공격하였다. 1909년 4월 이성화의진은 신보현의진(申保鉉義陣)에 합세하여 순창군 가포곡(加布谷) 일대에서 일본군과 접전을 벌였고, 5월 1일 태인군 인곡면(仁谷面), 5월 19일 고부군 벌말면(伐末面), 6월 20일 고부군 우덕면(優德面) 등지에서 일본 군경과 전투를 벌였다.
김봉안은 1909년 음력 1월 이성화와 함께 70명의 의병을 이끌고 전북 태인ㆍ정읍 일원에서 활동하다 같은 해 10월 17일 전주경찰서 변장수색대에 체포되었다.
1909년 10월 27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이른바 폭동죄로 태(笞) 100도(度)를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09. 10. 27)
- 暴徒 搜索에 關한 件(1909. 11. 8) 暴徒에 關한 編冊
- 受刑人名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권 515면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1986) 제15권 809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