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북 예천(醴泉) 사람이다.
1907년 경북 문경에서 기의한 이강년 의병부대의 종사부에서 활동하였고, 1915년 5월 문경과 충북 단양(丹陽)을 무대로 군자금 모집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1915년 김주상(金周相) 등 3명과 독립운동에 투신하기로 뜻을 모으고, 독립운동에 필요한 군자금 모집을 주요 활동지침으로 정했다. 그리하여 그는 같은 해 5월 8일 경북 문경군(文慶郡) 호계면(虎溪面) 구상리(九上里)의 김중배(金重培)로부터 10여 원의 군자금을 수합했다.
그리고 1915년 5월 24일에는 김진갑(金珍甲)·고심(高 ) 등을 동지로 규합한 뒤, 군자금 모집활동을 벌여 나갔다. 나아가 이들은 조직을 확대하고자 동지 포섭에도 힘을 쏟았다. 우선 그들은 각자 곤봉을 들고 충북 단양군 대흥면(大興面) 범산리(凡山里)에 사는 이휘수(李徽洙)에게서 북포(北布)와 비녀 등을 수합했으며, 같은 해 5월 25일에도 각자 곤봉을 들고 단양군 금강면(金崗面) 용부원리(龍夫院里)의 이범구(李範九)로부터 군자금을 수합했다.
그러던 중 그는 붙잡혀, 1915년 6월 3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소위 강도로 징역 10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輯 301面
- 判決文(1915. 6. 30. 大邱地方法院)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