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김태원(金泰元) 의진에 가담하여 전남 영광(靈光)·나주(羅州)·광주(光州)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김태원은 전남 나주 출신으로 1895년 일제에 의한 명성황후(明成皇后) 시해와 단발령이 강제 시행되자, 그는 안성(安城)에서 봉기한 민승천(閔承天) 의진에 가담하여 선봉장이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1896년 1월 17일 경기도 백현(魄峴)전투, 같은 해 2월 남한산성(南漢山城) 전투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이후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으로 일제에 의해 자주적 외교권이 박탈되고, 이듬해 1월 통감부(統監府)가 설치되어 국왕의 통치권이 손상되는 국망의 상황이 도래하였다.
이에 김태원 의병장은 아우 김 율(金聿)과 함께 1906년 10월 5일 나주에서 봉기하였는데, 이 때 김해도는 여기에 가담하여 의병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1907년 9월 기삼연(奇參衍) 의병장이 장성(長城)에서 거의하여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를 조직하자, 김해도는 김태원 의병장을 따라 이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특히 그는 김태원 의진에서 종군하면서 무장(茂長)·법성포(法聖浦)·고창(高敞)·장성(長城) 등지에서 일본군과 격전을 벌여 큰 전과를 올렸다. 그리고 그는 1907년 10월 29일에는 고창에서 일본군을 격퇴하는데 참전하였고, 같은 해 12월 7일에는 법성포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무기를 노획하는데도 앞장섰다.
또한 그는 1908년 1월 3일 김태원 의병장의 지휘 아래 함평(咸平) 순사주재소를 공격 점령하여 무기와 군자금품을 노획하는데 가담하였다. 같은 해 2월 2일 기삼연 의병장이 붙잡혀 순국한 뒤, 김태원 의진은 기삼연 의진의 잔류 병력과 합세하여 광주 일원 곳곳에서 이합집산(離合集散)하면서 일본군 수비대를 유격전술로 공격하였는데, 이 때에도 그는 김태원 의진에서 소속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다가 그는 1908년 4월 25일 김태원 의병장 및 20여 명의 동료 의병들과 함께 어등산(魚等山)에서 일본군 수비대의 기습 공격을 받아 전사,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2집 643·644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