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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10272
성명
한자 金平根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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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의병 포상년도 1996 훈격 애족장
1907년 장운식 의진(張雲植義陣)에 소속되어 민한식(閔漢植)·신돌석(申乭石)·곽준희(郭俊熙) 등과 협의하여 충북(忠北) 옥천(沃川)전북(全北) 금산(錦山)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금하다 피체(被逮)되어 징역 5년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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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충북 영동(永同) 사람이다.

일제는 1904년 한국 침략의 경쟁국인 러시아 군대를 기습공격하여 러일전쟁을 도발하고 한일의정서를 강제하여 한국을 그들의 전쟁기지로 삼았다. 그런 다음 같은 해 8월에는 한일협약으로 고문정치를 강요하여 재정권과 외교권을 장악하여 갔다. 이어 1905년 화폐개혁을 통해 경제를 파탄으로 몰아넣더니 을사조약을 강제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내정을 간섭하였다.

1907년에는 정미7조약으로 대한제국의 내정을 완전 장악한 후 군대마저 강제 해산하였다. 이제 대한제국은 자주권을 잃어 사실상 국권을 상실한 것과 같았다.

이와 같이 국망(國亡)의 조짐이 심화되자 전국 각지에서 의병이 봉기하여 국권회복을 위해 일제와 항쟁하였다. 대한제국군 출신의 해산 군인을 비롯하여 새로이 많은 인사들이 거의하여 의병전쟁을 전민족적 운동으로 발전시켜 갔다.

이와 같은 시기에 김평근은 분연히 일어나 1907년에 거의한 장운식(張雲植)의진에 참여하여 대일항전을 전개하였다. 그는 의진 내에서 주로 군수금품 모집을 담당하여 민한식(閔漢植), 임해준(任海俊), 곽준희(郭俊熙) 등의 동지들과 함께 충북 옥천(沃川), 전북 금산(錦山) 등지에서 여러 차례에 걸쳐 군자금을 수합하는 등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그는 1909년 3월 일경에 붙잡혀 6월 1일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09. 6. 1. 京城控訴院)
  • 韓國獨立運動史資料(國史編纂委員會) 第14輯 45·46面
  • 永同郡誌(1991) 136∼138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1輯 518·519面
  • 大韓每日申報(1909. 6. 3)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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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김평근 - 충청북도 영동(永同) -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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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내산재 충청북도 영동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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