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전북 고부(古阜) 사람이다.
김영백(金永伯) 의진에 가담하여 전북 흥덕(興德)·고부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김영백 의병장은 전남 장성(長城) 출신으로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7條約)」이 체결되고, 민족의 무력인 군대마저 해산되어 우리나라가 일제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자 의병을 일으켰다. 김영백 의병장은 1907년 10월 전남 장성군 북이면에서 1000여 명의 장병을 모아 의병부대를 편성하는 한편 군민들로부터 군자금과 군수품을 징발하여 군비를 갖추었다. 그런 다음 1908년 3월 4일 전북 정읍(井邑) 단곡리(丹谷里)에 주둔한 일본군 수비대를 기습 공격하여 전과를 올리는 등 본격적으로 대일 항전을 전개하기 시작하였다.
김치도는 이 때 김영백 의진에 가담하여 같은 해 7월 일본군 흥덕(興德) 수비대와 교전하였고, 9월 21일 방장산(方丈山) 산록의 백계동(白溪洞)에서도 일본군 헌병 및 순사대와 접전하였다. 이어 같은 해 10월 상순 김영백 의병장의 지휘 아래 전남 장성군 북이면 신기리(新基里)에서, 11월 상순에는 오현(鰲峴)에서 일본군 헌병대와 전투를 벌였다. 그리고 이듬해 4월 5일에는 이성실(李成實) 등 동료 의병들과 함께 전북 고부군 소정(所井)면 등계리(登桂里)에서 군자금을 징수하는 등 의병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10년 1월 31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징역 3년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811·853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