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9년 음력 5월 전북 부안군(扶安郡)에서 서주사의진(徐主事義陣)에 참여하여 군자금을 모집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던 중 순국하였다.
일명 서주사의진을 이끈 의병장이 누구인지 명확하지 않으나, 전북 무장 출신의 서응오(徐應五, 일명 徐鍾採)일 가능성이 높다. 서응오는 1907년 10월 기삼연(奇參衍)이 결성한 호남창의회맹소(湖南倡義會盟所)에 가담했으나, 기삼연이 순국하자 전남 영광(靈光) 출신의 이대극의진(李大克義陣)에서 활동하다 독립하였다. 1909년 음력 9월 의진을 해산한 뒤에도 활동을 지속하였다. 1913년 체포되어 옥고를 치르다 1916년 4월 옥중 순국하였다.
김치국은 망건 제조업에 종사하다 서주사의진에 들어가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였다. 1909년 음력 5월 서주사 의병장 등 10명과 함께 총기 10정을 휴대하고 전북 부안군 당북리(堂北里)에서 백진사(白進士)로부터 엽전 10냥, 신승지(申承旨)로부터 엽전 1백 냥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0년 5월 27일 광주지방재판소(光州地方裁判所) 전주지부(全州支部)에서 이른바 강도죄로 징역 5년을 받고 전주감옥(全州監獄)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10년 8월 22일 옥중 순국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光州地方裁判所 全州支部 : 1910. 5. 27)
- 合葬簿(全州刑務所, 1916)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811~81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