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충남 연산(連山) 사람이다. 이봉백(李鳳白) 의진에 가담하여 경북 순흥(順興) 일대에서 활약하였다. 1904~5년간의 러일전쟁을 승리로 이끈 일제는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을 체결하여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박탈하고, 통감부를 설치하여 우리의 내정을 속속 장악하여 갔다. 이후 1907년에 이르면 다시 헤이그 특사사건에 대한 책임을 물어 광무황제를 강제로 퇴위시키는 한편 「정미7조약(丁未7條約)」을 체결하고 군대를 해산시키는 등 식민지화를 위한 준비에 박차를 가하였다. 이러한 소식을 들은 전국 각처의 뜻있는 애국지사들은 의병을 다시 일으켜 무장투쟁을 통해 일본제국주의에 강력하게 저항함으로써 국권회복을 달성하고자 분투하였다. 김말출은 이같은 시기인 1909년 3월경 이봉백 의진에 투신하여 의병활동을 하였다. 특히 그는 의병활동 자금을 확보하기 위한 비상 수단으로 1909년 3월 동지들과 함께 총 2정을 휴대하고, 경북 순흥군(順興郡) 화천면(花川面) 신흥리(新興里)에서 군자금 모집활동을 하였다. 그러다가 붙잡혀 1909년 5월 31일 대구지방재판소에서 징역 5년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같은 해 6월 19일 대구공소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35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