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충북 청풍(淸風) 사람이다. 유인석(柳麟錫) 의진에 참여하여 충북 충주(忠州)·제천(堤川)에서 활약하였다. 권호선은 일제가 1895년 명성황후를 시해하는 만행을 저지르고, 친일정권을 사주하여 단발령과 복제개혁을 강행할 때 국권의 위기의식을 절감하고 분연히 궐기하여 의병에 참여하였다. 충주성 전투에서 후퇴한 유인석 의진은 다시 제천에 집결하여 병력을 수습하였다. 의병진인 제천에 집결하였다는 소식을 듣고 각처에서 활동하던 의병장들이 제천에 모여들었다. 이에 1896년 음력 2월 1일 권호선도 영춘(永春)에서 포수 16명을 거느리고 왔다. 이밖에 문경에서 거의하였던 이강년도 군사를 거느리고 왔으며, 강원도 지역에서는 한동직(韓東直)·이인영(李麟榮)이 원주에서, 이명로(李明魯)가 횡성에서 군사를 거느리고 왔다. 이에 제천의진은 이강년을 유격장으로 임명하고, 한동직을 참장(參將), 이명로를 영서소모장(嶺西召募將)에 각각 임명하여 다시 활기를 찾기 시작하였다. 특히 그는 유인석 의진에 참여하여 충주성 전투 때 신지수(申芝秀)·조달승(趙達承)과 긴밀히 연락하여 미리 군대를 충주부근 산속에 숨겨 두었다가 본진이 충주를 정면으로 칠 때 후면에서 공격하여 적에게 막대한 피해를 주었다. 그 후 제천전투에서 패하자 유인석은 7월 11일 강원도 대화(大和)에 이르러 서상렬(徐相烈)·이강년(李康秊)과 함께 평안도 방면으로 갈 것을 결정하고 관서지방 이동의 포고문을 발표하였다. 이에 서상렬을 전군, 이강년을 후군으로 한 서행장정(西行長征)의 행렬이 태백산맥을 따라 북으로 이어졌다. 이후 권호선도 유인석 부대를 따라 만주로 갔다가 그곳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1권 213면
- 호서의병사적(이구영편역, 1993) 53·5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집 385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