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3권(2017년 발간)
1908년 음력 1월 경기도에서 전복규의진(田福奎義陣)에 참여하여 연천군(漣川郡)과 마전군(麻田郡) 등지에서 활동하고, 같은 해 음력 2월 하순 한창렬의진(韓昌烈義陣)에 참여하여 파주군(坡州郡)ㆍ교하군(交河郡) 등지에서 군자금 모집 활동을 하다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경기도 장단군(長湍郡) 출신의 한창렬은 1908년 음력 2월 박종한의진(朴宗漢義陣)의 중군장(中軍將)으로 경기도 고양군(高陽郡)ㆍ파주군ㆍ장단군 등지에서 활동하고, 일병(日兵)과 교전 중 박종한 의병장이 부상을 당하자 전복규(田福奎)ㆍ권중삼(權重三) 등과 합세하여 의병장이 되었다. 그리고 부하 수십 명과 함께 1908년 2월 하순 파주군과 교동군(交洞郡)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권중삼은 1908년 음력 1월 하순 전복규의진에 들어가 수십 명의 의병과 함께 연천군ㆍ마전군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그 후 전복규와 함께 한창렬의진에 합류하여 같은 해 음력 2월 하순 파주군 대원리(大院里), 교하군 쇠현동(釗峴洞) 등지에서 군자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체포되었다.
1908년 9월 22일 경성공소원(京城控訴院)에서 이른바 내란죄(內亂罪)로 징역 5년을 받고 상고하였다. 같은 해 10월 19일 대심원(大審院)에서 원판결 취소로 경성공소원으로 환송되었다. 1909년 11월 13일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15년을 받았다. 1912년 9월 15일 은사(恩赦)에 관한 조서(詔書)에 의해 징역 5년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控訴院 : 1908. 9. 22)
- 判決文(大審院 : 1908. 10. 19)
- 判決文(京城控訴院 : 1908. 11. 13)
- 刑事控訴事件簿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4) 별집 제1집 19~22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