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의병장으로 전북 고창·흥덕(興德) 등지에서 활약하였다.
대한제국은 1905년 11월 「을사륵약(乙巳勒約)」에 의해 국권이 피탈되고, 이어서 1907년 7월 「정미7조약(丁未7條約)」으로 군대까지 해산 당하는 등 일제의 식민지나 다름없는 상황이 되었다. 이에 우리 민족은 무력투쟁인 의병운동을 전개하여 갔고, 특히 해산군인들이 대거 의병대열에 참여함으로써 전국적인 국민전쟁으로 확대되었다.
이같은 시기에 강대영은 1909년 2월 15일 김영백(金永伯) 의병장으로부터 130여 명의 의병과 총기 70여 정 및 도검 5자루를 양도받아 의진을 편성하고 의병장이 되었다. 그리하여 고창 반등산(半登山)·흥덕 수강산(壽崗山) 등지에서 동년 3월 15일까지 군사훈련을 마친 후 일본군 토벌을 위하여 진군하던 중 붙잡혀 1909년 10월 27일 광주지방재판소 전주지부에서 유형(流刑) 10년을 받아 고초를 겪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제1집 662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