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 공훈록 24권(2019년 발간)
1919년 2월 말경 함경북도 회령군에서 강봉우(姜鳳羽)를 만났다. 강봉우는 용정촌에서 예수교학교 교사로 활동했으며, 독립운동을 준비하기 위해 아치볼드 바커를 찾아왔던 것이다. 여기서 아치볼드는 “이번이 절호의 기회이다. 여럿이 의견을 나눈 바 있지만, 나는 찬동한다”고 말하며 강봉우를 격려했다.
1919년 4월 30일자 조선총독부의 보고서에 따르면, 그는 당시 함경북도 회령에 거주하면서 교인들을 선동한다는 혐의를 받았다. 그는 3.1만세운동 관계자들의 인원, 직업, 사상자 및 구금자의 성명, 연령, 인원, 처형 및 시위 상황, 사진 등을 여러 차례 서울 주재 영국총영사에게 보고하였다. 1919년 6월 25일부터 원산에서 개최된 캐나다장로회 한국선교부 연례회의에 참석했다. 7월 10일에 열린 연례회의에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항의서를 하세가와(長谷川好道) 조선총독에게 보냈다.
용정선교지부로 전임했다. 은진중학교 교장을 겸하고 있던 1920년 10월 일본군의 간도 출병으로 경신참변이 일어났다. 그가 돌보던 교회들이 큰 피해를 입었다. 12월 20일 도(陶) 연길 도윤(道允)을 찾아가 일본군의 주둔에 대한 중국의 방침과 경신참변 시 한인들이 입은 피해 조사 결과에 대해서 문의했다. 국자가 감옥에 구금되어 있던 명동학교 교장 김약연(金躍淵)의 석방을 교섭했다. 여기서 김약연을 일본측에 넘기지 않겠다는 확인을 받아냈다. 그리고 그 지역 기독교 포교에 대한 일본인들의 방해와 중국 군경들의 질시 때문에 어려움을 호소하였다. 1923년 건강 문제로 조금 일찍 안식년을 받아 귀국했다. 하지만 건강을 회복하지 못하고 1927년 토론토(Toronto)에서 별세했다.
정부는 1968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하였다.
- 신한민보(新韓民報)(1917. 7. 12, 19)
- 불령단관계잡건(不逞團關係雜件)-조선인(朝鮮人)의 부(部)-재만주(在滿洲)의 부(25), (27)
- 만주지역(滿洲地域) 본방인재유금지관계잡건(本邦人在留禁止關係雜件)(국가보훈처, 2009) 143~146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3권 695~701면
- The Rev. Archibald Harrison Barker, 「The Korea Mission Field, March,」 1928, pp. 57~5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