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황해도 장연(長淵) 사람이다.
3·1운동 때 고향인 장연에서 만세시위를 주도하다 일경에 붙잡혀 오른쪽 눈이 실명되었다.
이후 항일의식을 더욱 불태우며 독립운동의 구체적 방도를 모색하던 그는 1920년 7월 황해도 장연에서 장규섭(張奎燮)·오양현(吳良鉉)·곽규호(郭奎浩) 등과 함께 대한적십자사청년단(大韓赤十字社靑年團) 및 의용단(義勇團)을 조직하였다. 의용단은 군자금 모집, 친일파 처단, 상해(上海) 대한민국임시정부에 대한 선전을 주요 활동 목표로 삼았다.
이들의 행동지침은 첫째 각 단원으로부터 매월 30전을 징수하여 권총을 구입할 것, 둘째 친일파와 밀정 등의 처단, 셋째 상해 대한민국임시정부와 연락하여 독립공채(獨立公債)를 팔 것과 「독립신문(獨立新聞)」의 구독, 넷째 단원 모집과 탈회자(脫會者)에 대한 조치 등이었다.
그는 이와 같은 방침 아래 주로 황해도 일대에서 활동을 전개하던 중 조직의 발각과 더불어 붙잡혀 1921년 6월 26일 해주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제8호 위반으로 징역 1년에 집행유예 3년을 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동아일보(1921. 5. 14)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1권 분책 587∼591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4집 503·504·95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