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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9650
성명
한자 尹永錫
이명 尹南儀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국내항일 포상년도 1996 훈격 건국포장
1926. 10월 이래 충남 예산에서 농촌의 문맹퇴치와 농민의 단결, 민족정신을 고취시키기 위해 형 윤봉길(尹奉吉) 의사(義士)가 조직한 각곡독서회(角谷讀書會)월진회(月進會)에 가입하여 1930년까지 농민의 단결과 청소년의 애국사상을 고취하는 등 농촌계몽운동에 적극 참여하였으며, 윤봉길 의사의 의거직전 형의 유품인 농민독본(農民讀本), 일기, 월진회취지서 등을 은닉하여 귀중한 유품을 보존하였고 윤의사 의거 후 일제의 탄압과 감시 하에서 윤의사의 유지를 지키기 위해 노력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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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취(鼓吹) : 의견이나 사상 따위를 열렬히 주장하여 불어 넣음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충남 예산(禮山) 사람이다.

1926년 10월부터 예산지역의 농촌계몽운동에 적극 활동하였다.

윤영석은 윤봉길의 동생으로 윤봉길이 1926년 10월 조직한 각곡독서회(角谷讀書會)에 가입하고, 1929년 3월 28일 일본침략정책을 풍자한 촌극 '토끼와 여우'를 공연하였다. 그리고 4월 8일에는 윤봉길이 야학생 중심으로 조직한 월진회(月進會)에 가입하여 농촌개혁운동과 부흥운동을 전개하였다. 특히 1930년 3월 15일 윤봉길이 중국으로 망명한 뒤로는 그가 월진회를 이끌며, 토론회와 민족계몽운동을 전개하였다.

1932년 4월 그는 윤봉길이 보낸 편지를 보고, 그의 거사를 깨닫고 윤봉길이 직접 쓴 농민독본(農民讀本)·기사년일기(己巳年日記)·월진회취지서(月進會趣旨書) 등을 천장에 극비 보관하였다.

1932년 5월 정종호(鄭鍾浩)가 만든 예산농고(禮山農高) 독서회 조직에 적극 찬동하였다. 그런데 1932년 12월 정종호가 예산농고 독서회 사건으로 붙잡히고 조사가 확대되자, 일경의 감시를 피하여 1933년 1월 중순 경 출가(出家)하여 해방될 때까지 선의(璇儀)라는 가명을 가지고 피신생활을 하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6년에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참고문헌>
  • 己巳年 日記(尹奉吉, 1929)
  • 創立趣旨書(月進會, 1929. 4. 8)
  • 尹奉吉義士의 書信(1931. 8. 15)
  • 韓國日報(1972. 8. 10)
  • 寶物指定書(文化公報部, 1976. 5. 21)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윤영석 윤남의(尹南儀), 선의(璇儀), 호 : 죽파(竹坡) 충청남도 예산(禮山) -
본문
1916년 12월 28일 충청남도 예산군(禮山郡) 덕산면(德山面) 량리(梁里, 현 시량리)에서 태어났다.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호는 죽파(竹坡)이다. 이명은 윤남의(尹南儀)와 선의(璇儀)가 있다. 아버지는 윤황(尹墴)이며, 어머니는 경주 김씨 김원상(金元祥)이다. 윤봉길(尹奉吉)의 친동생이다.맏형인 윤봉길은 청년 시절부터 농민 운동에 관심이 많았는데, 형의 영향을 받아서 유년 시절 형을 도와 농촌계몽운동에 참여하였다. 1926년 10월 윤봉길이 조직한 각곡독서회(角谷讀書會)에 가입하여 활동하였으며, 1928년 부흥원(復興院)을 설립하고,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일제의 침략 정책을 풍자한 촌극 「토끼와 여우」 공연을 기획하여 대중 앞에서 실연함으로써 많은 사람들의 격찬을 받았다.윤봉길은 야학생들을 중심으로 1929년에 월진회(月進會)를 조직하였는데, 이 단체에 가입하여 “실력을 배양하고 경제를 부흥시켜 조국을 독립시키자”는 목표를 가지고, 부업을 희망하는 농가에 새끼 돼지를 지원하거나 닭 사육을 장려하는 운동을 적극적으로 전개하였다. 1930년 3월 15일 윤봉길이 독립운동을 위해 중국으로 망명하자, 윤봉길의 뜻을 유지하여 형 대신 월진회를 이끌면서 독서토론회와 농촌계몽운동을 지속하였다.1932년 2월 윤봉길로부터 거사가 일어날 것임을 암시하는 편지를 받고, 서둘러 윤봉길이 저술한 『농민독본(農民讀本)』과 『기사년일기(己巳年日記)』, 「월진회취지서(月進會趣旨書)」를 천장에 보관함으로써 이후 일제 경찰이 가택수색을 나왔을 때 윤봉길의 유품을 안전하게 지킬 수 있었다.한편 1932년 5월 월진회에서 함께 활동한 정종호(鄭鍾浩)가 윤봉길의 독립정신을 계승하기 위해 강봉주(姜鳳周)·한정희(韓定凞)·박정순(朴正淳)·박희남(朴熙南) 등과 협력하여 예산공립농업학교(현 공주대학교 산업과학대학) 학생들을 대상으로 독서회를 조직하자 이들의 활동을 적극적으로 찬성하며 지원하였다. 이 조직은 “학생 동원의 부당성과 한인 학생들의 차별정책 철회” 등을 주장하며 동맹휴학을 전개하는 등 일제의 지배정책에 반대하는 활동을 이어나갔다.그러던 중 독서회의 활동이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정종호를 비롯하여 관련된 사람들이 대거 붙잡히자 1933년 1월 경찰의 눈을 피해 집에서 나와 선의(璇儀)라는 이명을 쓰며 은거하였다. 뿐만 아니라 동료들과 함께 윤봉길의 유해를 비밀리에 고향으로 들여오려다 일제 경찰에 발각되어 붙잡히기도 하였다.대한민국 정부는 1996년 건국포장을 수여하였다.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묘소명 소재지
국립묘지 대전현충원 대전광역시 유성구
국립묘지 안장자 위치정보 시스템 바로가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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