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이길구는 1919년 3,1만세운동이 일어나자 토지 등을 정리해 약 8만원의 독립자금을 마련하여 상해(上海)로 건너가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 臨時政府)에 가담하였다. 또 상해에 있는 유일학생회(留日學生會) 회원으로도 활동하였다. 유일학생회는 1921년 10월 동경(東京) 유학생의 2.8독립선언을 기념하여 단체명을 이팔구락부(二八俱樂部)라고 개칭하고 기념 운동회를 개최하였다.
1922년 임시정부에서 활동하며 국민대표회(國民代表會) 반대운동에 참여하였다. 같은 해 9월 1일 국민대표회가 개최되자 이를 반대하고 임시정부를 유지하자는 내용의 결의문과 선언서를 김진태(金鎭泰), 이용환(李龍煥), 오복영(吳福泳) 등 39명 연명으로 작성하여 배포하였다. 1924년 2월 개최된 임시의정원 회의에서 의원직을 사임할 때까지 의정원 의원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1926년 상해에서 조선의 독립을 열망하며 28세의 젊은 나이에 운명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제6권 342면
- 上海 및 南京在住 不逞鮮人의 有力者 氏名에 관한 件(上海總領事, 1923. 1. 8) 不逞團關係雜件 朝鮮人의 部 上海假政府(5)(국사편찬위원회)
- 國民代表會 反對派의 宣言書 配付에 관한 件(上海總領事, 1922. 8. 22) 不逞團關係雜件 鮮人의 部 在上海地方(4)(국사편찬위원회)
- 上海不逞鮮人의 議政院會議 續報의 件(上海總領事, 1924. 3. 24) 不逞團關係雜件 朝鮮人의 部 上海假政府(5)(국사편찬위원회)
- 朝鮮獨立運動ⅱ(金正明) 472면
- 中外日報(1926. 12. 10)
- 在上海 不逞鮮人의 動靜(朝鮮總督府 警務局長, 1921. 10. 19) 不逞團關係雜件-鮮人의 部-在上海地方(3)(국사편찬위원회)
- 朝鮮日報(1926. 12. 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