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3권(1996년 발간)
경북 달성(達城) 사람이다.
1922년 당시 중국 북경에 위치한 로하중학(潞河中學) 4학년에 재학하면서 국권회복운동에 투신할 기회를 엿보던 중, 그 해 8월 중국 북경에서 알게 된 독립운동가 장건상(張建相)으로부터 의열단원들과의 연락임무를 부여받고 국내로 파견되었다. 귀국 후 서울에서 의열단원(義烈團員) 김시현(金始顯)·황옥(黃鈺)과 회합한 그는 장건상의 전언(傳言)인, 국내에서 항일 선전문제와 거사에 사용될 폭탄을 국내에 반입할 것이니 인수할 준비를 하라는 내용을 전달하면서 11월 중순까지 서울에 체류하였다.
1922년 12월초 다시 중국 북경을 거쳐 상해로 간 그는 장건상을 만나 국내에서의 선전시기는 아직 이르다는 황옥의 전갈을 복명(復命)하는 한편, 상해 길익리(吉益里)에서 김원봉(金元鳳)을 만나 의열단 가입을 권유받고 단원으로 가입하였다. 의열단 단원으로 가입한 그는 같은 달, 장건상과 김원봉으로부터 단원 김시현과 유석현(柳錫鉉)을 급히 천진으로 소환하는 내용의 서신연락 임무를 위촉받아 재차 국내 밀사로 파견되었다. 이에 따라 12월 17·18일경 남영득(南英得)과 함께 서울로 잠입하여 연락 임무를 완수하는 한편, 김시현을 만나 폭탄을 국내로 반입하여 서울의 관공서에 투척하는 동시에 관공리를 암살·처단할 것을 협의하였다.
또한 1923년 1월 2일경 김시현·유석현으로부터 폭탄준비가 완료되는 대로 천진으로 돌아갈 것이라는 전언을 부탁받고 중국 상해로 건너가 김원봉에게 전달한 뒤 다시 북경으로 돌아왔다.
그 뒤 동년 1월 11일 황옥 일행이 천진에 도착하자 그들의 요청으로 통역 및 기타 업무를 맡는 한편, 1923년 3월 3일 천진역에서 김시현으로부터 대형폭탄 3개가 들은 트렁크 1개를 교부받아 중국 안동현(安東縣)의 홍종우(洪鍾宇)의 집으로 운반할 것을 부탁받은 뒤, 3월 5일경 백영무(白英武)와 함께 안동현의 홍종우를 방문하여 트렁크를 전달하였다. 이어 3월 12일 신의주에서 김시현과 만나 서울로 온 뒤 관공서 파괴와 관공리 암살시기를 기다리고 있던 중, 3월 15일 일경에 발각되어 붙잡히고 말았다.
1923년 8월 21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제령(制令) 7호 및 폭발물취체규칙 위반으로 징역 5년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11집 252∼279·398·733·737·738·748·749면
-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부) 218·220·221·228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3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7권 368면
- 한국민족운동사료(중국편)(국회도서관) 423·426면
- 판결문(1923. 8. 21. 경성지방법원)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기려수필(국사편찬위원회) 284·285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