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대구(大邱) 사람이다.
1914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독립운동의 방안을 모색하다가 귀국하여 1915년 음력 1월 윤상태(尹相泰)·박상진(朴尙鎭)·서상일(徐相日)·홍주일(洪宙一) 등과 함께 경북 달성군(達城郡)에서 시회(詩會)를 가장하여 비밀결사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恢復團)을 조직하고 교통부장(交通部長)을 맡아 주도적으로 활동하였다.
동단은 대구를 중심으로 주로 경상우도(慶尙右道) 지역의 중산층 이상의 혁신유림들이 참여하여 곡물상의 상업조직과 사립교육기관을 통하여 독립군을 지원한 구국경제활동단체였다.
그는 만주·노령(露領)지방의 독립운동가들과 연계투쟁의 방안을 모색하는 한편 1916년 8월 대한광복회(大韓光復會)의 김진우(金鎭瑀)·김진만(金鎭萬)·최병규(崔丙圭) 등과 연계하여 대구의 자산가 서우순(徐祐淳)으로부터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일경에 붙잡혀 1917년 6월 대구복심법원에서 실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1919년 3·1독립운동 당시에는 서울의 만세시위에 참여한 후 운동의 확산을 위해 만주로 건너가 항일활동을 계속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6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한국독립운동사(문일민) 451면
- 한국독립사(김승학) 하권 216면
- 고등경찰요사 23·183·185·27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176·24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