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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7467
성명
한자 徐健洙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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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1995 훈격 건국포장
1919. 3월 파리강화회의에 한국독립을 호소하기 위하여 김창숙(金昌淑) 등이 유림대표(儒林代表)가 되어 작성한 독립청원서에 유림(儒林)의 한 사람으로 서명(署名)특수 공적(特殊功績)인정(認定)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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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북 달성(達城)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파리강화회의에 한국독립을 호소하기 위하여 김창숙(金昌淑) 등이 유림(儒林) 대표가 되어 작성한 독립청원서에 유림의 한 사람으로 서명하는 등 항일운동을 전개하였다.

세칭 파리장서사건(巴里長書事件)이라고 불리는 이 거사에는 김복한(金福漢)을 중심으로 한 호서유림과 곽종석(郭鍾錫)을 중심으로 한 영남유림 137명이 참여함으로써 명실상부한 유림의 항일운동이었다. 파리장서의 요지는 일제가 자행한 명성황후·광무황제(光武皇帝)의 시해와 한국 주권의 찬탈과정을 폭로하면서 한국독립의 정당성과 당위성을 주장하는 것이었다.

그리하여 이들 유림은 김창숙(金昌淑)을 파리로 파견하고자 상해로 보냈으나, 직접 가지는 못하고 이 문서를 신한청년당(新韓靑年黨)의 대표로 파리에 파견된 김규식(金奎植)에게 송달했으며, 국내의 각 향교에도 우송되었다.

그런데 이 일은 경상북도 상주의 만세운동과 관련하여 1919년 4월 12일 서명자의 한 사람이었던 송회근(宋晦根)이 붙잡히는 바람에 발각되었다.

이로써 서건수도 일경에 붙잡혀 고초를 겪었다. 일제는 이들 유림이 한국인의 존경을 받는 인물들이었으므로 민족적 감정이 더욱 번질 것을 우려한 나머지 크게 부각시키지 않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부) 250·268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8권 935면
  • 벽옹김창숙일대기(심산사업회) 97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서건수 자 : 중강(仲强), 호 : 성암(性菴) 경북 대구(大邱) 파리장서운동
본문
1874년 1월 17일 대구도호부(大邱都護府) 상수남면(上守南面) 우록동(友鹿洞, 현 대구광역시 달성군 가창면 우록리)에서 서진국(徐鎭國)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본관은 달성(達城)이며, 자(字)는 중강(仲强), 호(號)는 성암(性菴)이다. 영남의 이름난 유학자였던 조부 서찬규(徐贊奎)와 간재학파(艮齋學派)의 전우(田愚) 아래에서 한학을 수학하였으며, 1919년에는 대구부 남산정(南山町, 현 대구광역시 중구 남산동)에 거주하였다. 영남 유림의 일원으로서, 당시 제1차 세계대전 종전 문제를 다루는 파리강화회의와 민족자결주의의 제창이라는 세계적 추세를 배경으로 추진된 유학자들의 독립청원 계획에 참가하였다.당시 유림은 1919년 김윤식(金允植)과 이완용(李完用) 등의 명의로 ‘한국 유림은 독립을 원하지 않는다’는 취지의 「한일불리청원서(韓日不離請願書)」가 파리강화회의에 제출될 것이라는 소문에 크게 반발하였고, 3월 1일 민족대표들에 의한 독립선언에도 유림 대표자가 참여하지 못했다는 사실에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다.베르사유 조약이 체결되는 파리로 유림의 탄원서를 발송하자는 계획을 수립한 경상남도 거창의 곽종석(郭鍾錫)은 경상북도 성주의 장석영(張錫英)·김창숙(金昌淑) 등과 뜻을 같이 하였다. 한국과 일본이 본래 다른 나라이며, 일본은 한국인들을 탄압하고, 고종을 시해하기에 이르러 한국인들이 독립만세를 외치게 되었으니 한국이 마땅히 독립해야 한다는 내용의 「한국유림송파리평화회서(韓國儒林送巴里平和會書)」를 작성하고 서명자를 모으기 시작하였다.이때 영남을 대표하는 유학자 중 한 명으로 조부 서찬규 아래에서 동문수학한 곽수빈(郭守斌) 등과 함께 장서에 서명하였다. 이 파리장서(巴里長書)는 김창숙을 통해 상하이의 대한민국 임시정부에 전달되었으며, 한문본은 국내 각지의 향교에 전달되었다.일제 경찰은 1919년 4월 성주 읍내에서 거행된 만세운동 과정에서 붙잡은 사람들을 통해 파리장서의 존재를 인지하였고, 이후 6월 경 김창숙이 국내로 발송한 파리장서를 입수하여 서명자들을 붙잡았고, 그 과정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붙잡혔다. 일제는 곽종석·장석영 등 주도자들에게 집중하여 조사 과정의 고초를 겪고 증거불충분으로 풀려났다.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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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내산재 경상북도 칠곡군

관련 현충시설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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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비석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 비 대구광역시 달서구
2 비석 파리장서 비 경상남도 거창군
3 비석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 비 서울특별시 중구
4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5 비석 한국유림 독립운동 파리장서비 전라북도 정읍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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