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 3. 20 밤 경남 의령군 상정면 덕교리에서 조균구 (曺均九) , 김구현 (金九鉉) , 조균수 (曺均壽) , 김응현 (金應鉉) , 박용주 (朴龍周) 기타 동 리민 (同里民) 다수와 공동으로 ‘조선독립’ (朝鮮獨立) 의 희망을 달성하려는 목적으로 조선독립만세 (朝鮮獨立萬歲) 를 고창 (高唱) 하면서 동면사무소 (同面事務所) 로 몰려가 면장 (面長) 강재수 (姜載秀) 에 대해 조선독립만세 (朝鮮獨立萬歲) 를 부르라고 강요하고 동인 (同人) 으로 하여금 부득이하게 만세를 같이 부르게 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 피체 (被逮) 되어 징역 8월에 미결기간 (未決期間) 3월을 합산하여 11월간 (月間) 옥고 (獄苦) 를 치른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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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1권(1994년 발간)
경남 의령(宜寧) 사람이다.
1919년 3월 20일 밤 의령군 상정면(上井面) 덕교리(德橋里)에서 조균구(曺均九)·김구현(金九鉉)·조균수(曺均壽)·김응현(金應鉉)·박용주(朴龍周) 등과 함께 주민들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을 벌였다.
그는 면사무소로 몰려가 면장 강재수(姜載秀)에게 독립만세를 부르라고 촉구하면서 시위에 참가케 하는 등 활동을 계속하다가 동지들과 함께 일경에 붙잡혔다.
그 해 6월 21일 부산지방법원 진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공소하였으나 7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 형이 확정되어 11개월여의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3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7. 10 大邱覆審法院)
- 宜寧郡誌(宜寧郡誌編纂委員會, 1983. 7. 1) 494·495·497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315·316面
- 釜山·慶南 3·1運動史(3·1同志會, 1979. 9. 10) 361·362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1251·1252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