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남 함양(咸陽) 사람이다.
1919년 3월 경남 함양군 안의면(安義面)에서 독립만세시위가 일어나자 태극기를 군중에게 나누어주며 참여하였고 1922년 10월 대구고보(大邱高普)의 맹휴운동(盟休運動)을 주동하였다가 일경에 붙잡혀 고문을 받았으며 1923년 5월 경성전차회사(京城電車會社) 파업을 주도하여 민족차별대우에 항거하며 항일투쟁을 펴다 서대문형무소에 투옥되었다고 한다.
1925년 9월 29일 대구(大邱) 신정(新町) 이금이(李今伊)의 집에서 신재모(申宰模)·방한상(方漢相) 등과 회합하여 무정부주의를 실현하는 단체를 조직하기로 결의하고 30일에 대구 서성정(西城町) 대구노동회관 내에서 진우연맹(眞友聯盟)을 비밀결사하였다.
1926년 5월 이금이의 집에서 회합하고 일본과 상해의 동지들과 제휴하여 8월 10일을 기해 상해의 고삼현(高三賢)으로부터 폭탄을 입수, 대구 시내의 주요관청 폭파, 각 관서의 수뇌 주살(誅殺), 번화가점포 파괴등을 계획하였으나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1927년 7월 5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에 집행유예 4년을 선고받았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刑事事件簿
- 判決確定證明書(釜山地方檢察廳 : 1977. 2. 17)
- 判決文(1928. 5. 3 大邱覆審法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