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훈전자사료관

통합검색
독립유공자 명단보기
 

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4617
성명
한자 趙誠勳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학생운동 포상년도 2020 훈격 대통령표창
1941년 4월 서울에서 중앙고등보통학교 재학 중 교사 최복현(崔福鉉)의 지도 아래 5인 독서회(讀書會)를 조직하여 활동하다 체포되어 기소유예 처분을 받음.
원문보기 한자보이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39년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 중 노국환(盧國煥) 등 학우들과 매주 1회~2회씩 만나 민족과 독립에 관해 토론했다. 이듬해인 1940년 10월 조성훈은 노국환, 황종갑(黃鍾甲), 이기을(李氣乙), 유영하(柳永夏)와 함께 우이동(牛耳洞)에서 일주일에 1회씩 모여 역사와 정치 등을 토론할 수 있는 모임을 갖기로 했다. 이에 ‘5인조 독서회’를 조직하고 같은 학교 교사 최복현의 지도 아래 매주 일요일에 모이기로 협의했다.

이들은 1941년 7월 초순 역사, 민족해방 등에 대해 토론하고, 다른 학교와 연락문제, 여름 방학 중 계획 등에 대해 회의했다. 또한 활동의 범위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조성훈과 유영하는 일본 유학 중인 선배 학우들과 연락을 도모하기로 했다. 또한 함흥(咸興)이 고향인 황종갑, 이기을은 항일유격대와 연락하기로 했다. 노국환은 아버지와 큰 형의 인맥을 이용해 국제정세와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 臨時政府)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2학기 개학 사나흘 전에 서울에서 만나기로 협의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8월 17일 조성훈이 서울을 다녀온 후 황종갑의 편지가 일본 경찰의 검열로 발각됐다. 이로 인해 8월 21일 조성훈은 가택수사를 당했다. 이때 『조선역사』, 『조선야담전집』, 『호암전집』, 『기독교의 본질』 등 10여 권의 책과 강의 공책을 압수당하고 체포됐다.

조성훈은 1940년 10월부터 1941년 8월까지 독서회를 조직해 활동하다가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그러나 함흥지방법원(咸興地方法院) 검사국(檢事局)에서 1941년 10월 15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9권 790~791면.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내산재 경기도 광주시

감사의 글 Total 0
목록 개수

인쇄 목록
  • 본 사이트 자료 중 잘못된 정보를 발견하거나 사용 중 불편한 사항이 있을 경우 알려주십시오.
  • 이용자의 참여가 사이트 가치 향상에 큰 도움이 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 독립유공자 공적조서는 정부포상 결정당시의 ‘공적조서’를 공개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있으며,
  • 독립유공자 공훈록은 공적조서상 근거정보를 기본바탕으로 전문가의 원고집필을 통해 발간된 책을 온라인으로 제공하는 것입니다.
  • 따라서, ‘공적개요(공적조서)과 공적내용(공훈록)’은 원칙적으로 수정불가하며,
  • 다만, 온라인으로 제공되는 기본정보(성명, 생몰일자, 본적지)에 대한 사항은 ‘오류신고’를 통해 신청 가능합니다.
  • 하단의 '오류신고목록'을 이용하시면 신고 내용의 적용여부를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 오류 신고 시, 개인정보 입력은 삼가 주시기 바랍니다.
페이지 별 오류신고
화면(사료)위치 독립유공자 공적정보 > 조성훈(관리번호:4617) 오류 유형 *
오류 제목 *
오류 내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