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6권(2021년 발간)
1939년 서울의 중앙고등보통학교 3학년 재학 중 노국환(盧國煥) 등 학우들과 매주 1회~2회씩 만나 민족과 독립에 관해 토론했다. 이듬해인 1940년 10월 조성훈은 노국환, 황종갑(黃鍾甲), 이기을(李氣乙), 유영하(柳永夏)와 함께 우이동(牛耳洞)에서 일주일에 1회씩 모여 역사와 정치 등을 토론할 수 있는 모임을 갖기로 했다. 이에 ‘5인조 독서회’를 조직하고 같은 학교 교사 최복현의 지도 아래 매주 일요일에 모이기로 협의했다.
이들은 1941년 7월 초순 역사, 민족해방 등에 대해 토론하고, 다른 학교와 연락문제, 여름 방학 중 계획 등에 대해 회의했다. 또한 활동의 범위를 확대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조성훈과 유영하는 일본 유학 중인 선배 학우들과 연락을 도모하기로 했다. 또한 함흥(咸興)이 고향인 황종갑, 이기을은 항일유격대와 연락하기로 했다. 노국환은 아버지와 큰 형의 인맥을 이용해 국제정세와 대한민국 임시정부(大韓民國 臨時政府)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기로 결정했다. 이들은 2학기 개학 사나흘 전에 서울에서 만나기로 협의하고 헤어졌다.
그러나 8월 17일 조성훈이 서울을 다녀온 후 황종갑의 편지가 일본 경찰의 검열로 발각됐다. 이로 인해 8월 21일 조성훈은 가택수사를 당했다. 이때 『조선역사』, 『조선야담전집』, 『호암전집』, 『기독교의 본질』 등 10여 권의 책과 강의 공책을 압수당하고 체포됐다.
조성훈은 1940년 10월부터 1941년 8월까지 독서회를 조직해 활동하다가 이른바 ‘치안유지법(治安維持法) 위반’ 혐의로 체포됐다. 그러나 함흥지방법원(咸興地方法院) 검사국(檢事局)에서 1941년 10월 15일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정부는 2020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신분장지문원지(身分帳指紋原紙)(경찰청)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8) 제9권 790~791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