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경상북도 안동(安東) 사람이다.
1919년 3월 17일의 예안면(禮安面)과 18일의 도산면 토계동(陶山面土溪洞) 일대의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평소부터 조국의 독립을 갈망하던 차에, 3월 17일의 예안면 장날을 이용하여 예안면장인 신상면(申相冕) 등의 주동으로 수천명의 시위군중이 대대적인 독립만세시위를 전개하자, 이날 오후 4시경, 이에 참여하여 격렬한 시위를 전개하였다.
곧 귀가한 그는 오후 6시경, 그의 집을 방문한 도산공립보통학교 3학년생인 이호기(李鎬基)에게 예안면 만세시위에서의 예안공립보통학교 학생들의 활동상을 전하면서 도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도 명일 교정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할 것을 권유하였다.
3월 18일 오전 11시경, 그는 이극호(李極鎬) 등 수십명의 주민들을 동원하여 그의 고향인 토계동 앞개울에서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를 신호로 30여명의 도산공립보통학교 학생들도 이호기의 주동으로 교정에서 일제히 독립만세를 외치며 시위행진하였다. 그러나 그후 일제에 체포되어, 이해 9월 4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2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판결문(1919. 9. 4 고등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41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325·132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