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충남 논산(論山) 사람이다.
1921년 11월 일본 동경에서 박렬(朴烈) 등과 함께 흑도회(黑濤會)를 결성하고, 1922년에는 흑우회(黑友會)를 창립하였으며, 1923년 불령사(不逞社)를 조직, 활동하였다. 그후 귀국하여 서울에서 1925년 4월 흑기연맹발기인회(黑旗聯盟發起人會)를 개최하였다.
홍진유는 1921년 11월 박렬 등과 무정부주의 활동을 전개하기로 하고 흑도회를 조직하였다. 그러나 내분이 생겨 다시 1922년 11월 흑우회를 창립하였다. 그들은 {현사회(現社會)}·{민중운동} 등의 잡지를 통해 무정부주의를 선전하고 동지들을 규합하였다. 그 결과 1923년 4월 김자문자(金子文子)·최규종(崔圭悰)·정태성(鄭泰成) 등과 함께 비밀결사인 불령사(不逞社)를 조직하였다. 그런데 1923년 9월 4일 관동대지진 당시 일본 경시청에 의해 붙잡혔으나, 불기소로 풀려났다. 당시 그들은 황실에 대한 모종의 계획을 세우고 김중한(金重漢)으로 하여금 상해 임시정부로부터 폭탄을 수입해 오도록 하였으나 사전에 발각된 것이다.
그후 그는 귀국하여 이복원(李復遠) 등 7명과 함께 1925년 4월 24일 서울에 흑기연맹발기인회를 열었으나, 일경에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1925년 11월 17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으로 징역 1년을 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병으로 보석되었으나, 1928년 5월 28일 서거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8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高等警察要史(慶北警察部) 162·222面
- 日帝侵略下韓國36年史(國史編纂委員會) 第8卷 308面
- 騎驢隨筆(宋相燾) 328面
- 近代日本社會運動史人物大事典(同編輯委員會, 1997) 第2卷 539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7卷 773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11輯 320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別集 第3輯 16·52面
- 東亞日報(1926. 11. 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