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조선국권회복단과 조선청년연합회에 참여해 독립운동을 하였다. 박영모는 1909년 청소년으로 조직된 비밀결사단체인 대동청년당(大東靑年黨)에 참여해 항일운동을 하였으며, 정치에 관한 비밀결사인 달성친목회(達城親睦會)와 강유원(講遊園)의 회원이기도 하였다. 그는 윤상태(尹相泰)·서상일(徐相日)·이시영(李始榮) 등과 1913년 음력 정월 15일 달성군(達城郡) 안일암(安逸庵)에서 국권회복에 관한 모의를 하고, 1915년 경북 달성에서 대구에 본부를 둔 조선국권회복단(朝鮮國權回復團)을 조직하였다. 이때 중앙총부의 교통부장에 선임되어, 1917~1918년에 중국 관내와 만주 등지를 왕복하며 그 지방의 동지와 연락을 취하였다. 또한 러시아 등지의 독립운동가와 연계를 모색하는 한편 동지규합과 군자금 모집 등의 활동을 하였으며, 3.1운동에 적극적으로 참가하는 등 독립운동을 하다가 ‘1919년 제령 제7호(정치범 처벌령)’ 위반으로 일본 경찰에 체포되었다. 1919년 6월 19일부터 대구지방법원 검사국에서 약 1년여 동안 취조를 받았으며 1920년 3월 22일, 고등법원 특별형사부로부터 불기소 판결을 받아 석방되었다.
출옥 후 박영모는 1920년 서울에서 조직된 조선청년연합회(朝鮮靑年聯合會) 결성에 참여하였다. 1920년 12월, 서울 종로 중앙기독교 청년회관에서 제1회 조선청년연합회 창립총회를 개최하였다. 박영모는 이때 의사(議事)로 참여하여 헌장 초안 등을 의결하고, 월간 기관 잡지 『아성(我聲)』의 발간 논의에 참여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3권 176~177면
- 韓國獨立運動史(문일민) 91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제7집 68~69·85~97·145~147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제8집 180~184면,
- 韓民族獨立運動史資料集(國史編纂委員會) 제9집 78~82, 107~111면
- 高等警察要史(慶尙北道警察部, 1934) 183~185면
- 決定文(大邱地方法院 豫審掛:1919. 9. 23)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6집 1068~1072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4집 470~482면
- 朝鮮獨立運動(金正明) 第1券 分冊 489~496면
- 朝鮮騷擾事件關係書類(3)(高警第349號, 1921. 1. 18)
- 決定文(高等法院 特別刑事部:1920. 3.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