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4권(1987년 발간)
경북 안동(安東) 사람이다.
1906년 4월 19일 안동군 주사(主事)로 임명되어 군수직무대행을 맡아 내치(內治)행정을 수행하는 한편, 이상룡(李相龍)·권세연(權世淵) 등의 의병활동을 지원하다 일경에 체포되었다고 한다.
국권이 침탈되자 1911년 동향인 이상룡·김동삼(金東三)을 의지하여 만주에 망명, 신흥무관학교를 수료하였다.
1911년에는 중국에 가서 청제(靑帝)의 내종숙(內從叔)되는 영검지(英劒之)를 만나 우리나라 국사를 논하고 일본침략의 격퇴를 강력하게 요청하였으나 중국에 신해혁명이 일어나 뜻을 이루지 못하였다.
이후 재만한인의 독립기지 구축과 동지규합활동을 계속하다가 일이 뜻대로 되지 않음에 울분을 참지 못하고 번민하다가 1919년 1월 25일 유하현(柳河縣)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83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鶴山行錄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0권 33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