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경(日警) : 일제 경찰.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9권(2011년 발간)
김중한은 일본 유학 중, 1922년 말 박열(朴烈), 홍진유(洪鎭裕), 정태성(鄭泰成), 이필현(李弼鉉) 등과 함께 무정부주의를 표방하는 흑우회(黑友會)를 창립하였으며, 국내로 들어와 서울에 흑노회(黑勞會)를 조직하였다. 1923년 4월 일본 도쿄에서 '불령사(不逞社)'라는 비밀결사를 조직하였고, 동년 9월 소위 일왕의 아들 결혼식에 참석하는 일본의 귀족을 비롯하여 내각총리대신 등을 폭살하려는 계획에 동참하였다. 마침 관동대지진이 일어나 고향으로 돌아왔는데, 9월 23일 용강경찰서에 체포되어 동월 25일 도쿄 경시청으로 압송되었다. 1926년 5월 6일 동경지방재판소에서 예심이 종결되고, 1926년 10월 26일 박열로부터 폭탄 수입의 의뢰를 받았던 혐의로 소위 치안경찰법위반, 폭탄물취체규칙위반으로 징역 3년(미결 구류 일수 2개년 통산)을 받았다. 이에 불복하고 공소하여 1927년 2월 4일 동경공소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선고받았으나, 구류일수가 오히려 20일이나 지났기 때문에 이튿날 5일 석방되었다. 그러나 4년여의 예심을 거치는 동안 시곡(市谷) 형무소에서 병으로 고생하였고, 출옥 후 일본 국수주의자들의 협박에 시달려야 했다. 이후 고향으로 돌아와, 1928년 평남 진남포에서 신간회(新幹會) 정치문화부 총무간사를 역임하다가 11월 9일 진남포경찰서에 구속되었다가 동월 18일 석방되기도 하였다. 1929년 8월 8일 평양공산당사건에 연루되어 다시 평양경찰서 형사에게 체포되어 평양으로 호송되었고, 동년 9월 탈출하였다. 이후 중국 장춘과 길림 등지에 머물며, 국민부(國民府)에서 활동하였다고 한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 豫審終結決定文(東京地方裁判所:1925. 7. 7)
- 고등경찰요사(경상북도 경찰부, 1934) 222면
- 朝鮮人에 대한 施政關係雜件 一般의 部(2)
- 東亞日報(1923. 9. 29, 1926. 5. 8, 5. 17, 6. 26, 10. 16, 10. 28, 1927. 2. 5, 2. 6, 2. 10, 1928. 11. 20, 1929. 8. 10, 9. 9)
- 재일조선인관계자료집성(박경식, 1975) 1권 東京朝鮮人狀況 139면
- 고등경찰관계연표(1922. 12, 1923. 1. 15)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1집 320~37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