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함경남도 정평(定平) 사람으로 기독교(基督敎)인이다.
1919년 3월 7일 정평읍 장날을 이용하여 장예학(張禮學)·윤화락(尹和洛)·노문표(盧文彪) 등과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그 진행을 주도하였다.
그는 3월 5일 손병희(孫秉熙) 등 민족대표가 서명한 독립선언서를 구해 읽고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기로 결심하였다.
이날 그는 그의 집에서 이대관(李大關)을 만나 만세시위 계획을 말하고, 태극기 1백여매를 제작하였다.
그는 배홍청(裵弘靑)·노용빈(盧龍斌)·주호택(朱鎬澤)에게도 만세시위계획을 의논하여 찬성을 얻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참여하도록 권유하였다.
또 6일에는 장예학·노문표의 집을 방문하여 그들에게 참여하도록 권유하고, 이종하(李宗夏)에게 대형 태극기 2개를 제작하도록 하였다.
3월 7일 약속대로 부내면 풍남리(府內面豊南里)에 많은 시위군중이 모이자, 그는 이들에게 태극기를 나누어 주고 독립만세를 선창하며 시위행진을 전개하다가, 이를 진압하기 위하여 출동한 일본 헌병에 의하여 강제로 해산되었다.
그후 일제의 검속 때 체포되어, 이해 5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1년 6월형을 받고 옥고를 치르었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2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2권 68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997·998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