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7권(1990년 발간)
대구(大邱) 사람이다.
그는 일본 동경에 유학하던 중 박 열(朴烈)·김정근(金正根)·이홍근(李弘根) 등과 함께 흑도회(黑濤會)에서 분열된 무정부주의 단체인 흑우회(黑友會)에서 활동하였다. 흑우회는 ≪흑도(黑濤)≫·≪불령선인(不逞鮮人≫ 등의 기관지를 발행하는 한편 불령사(不逞社)를 결성하기도 하였는데 그는 불령선인사(不逞鮮人社)의 기자로 활동하였다. 그런데 1923년 8월 일본 황태자를 암살하려 했다는 혐의로 불령사의 동지들이 일경에 붙잡힐 때 그도 함께 연루되어 붙잡혔으나 예심에서 면소(免訴)되었다.
그후 그는 귀국하여 1925년 9월 29일 신재모(申宰模)·방한상(方漢相) 등과 함께 대구에서 무정부주의 단체인 진우연맹(眞友聯盟)을 조직하였다. 진우연맹은 당시 회원이 천백여 명에 달하던 대구노동친목회(大邱勞動親睦會)를 그 세력 하에 두고 있었다. 또한 흑우회의 후신인 흑색청년연맹(黑色靑年聯盟)·반역아여맹(反逆兒聯盟) 등 재일(在日) 무정부주의 단체와도 관련을 가지면서 연계투쟁의 길을 모색하기도 하였다. 동 연맹에서는 항일운동의 구체적 방법으로서 향후 2년 내에 대구부 내의 도청·경찰서·우편국·법원을 비롯하여 관서·일본점포를 파괴하는 한편, 지사(知事)·경찰부장·관아(官衙) 수뇌부를 암살할 것을 계획하였다. 이를 위하여 파괴단(破壞團)을 조직하고 상해에 있던 무정부주의자 유 림(柳林)을 통하여 폭탄을 입수하기로 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계획을 추진하던 중 동 연맹원 안달득(安達得)이 일경에 붙잡혀 그의 집이 가택수색을 당한 결과 진우연맹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그리하여 그는 1926년 7월 일경에 붙잡혀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치안유지법 위반으로 징역 3년형을 선고받아 옥고를 치르고 1929년 4월 만기출옥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기 위하여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1977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일제침략하한국36년사(국사편찬위원회) 8권 220·233·473·487·500면
- 기려수필 325·353·354면
- 고등경찰요사 1·55·56·162·163·222·240·241면
- 명치백년사총서(김정명) 제3권 551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9권 156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별집 3권 2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11권 32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