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의진(義陣) : 의병의 군진. 의병 부대를 배치한 것.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경기도 고양(高陽) 출신으로 1907년 11월 이인영의진(李麟榮義陣)에 참여하였고, 1914년 임병찬(林炳瓚)이 조직한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이인영은 전기의병기에 유인석(柳麟錫)·이강년(李康秊) 등과 더불어 창의하여 강원도 일원에서 활약한 바 있었다. 이인영은 1907년 9월에 강원도 원주 등지에서 활약하고 있던 의병장 이은찬(李殷瓚)·이구재(李九載, 求采) 등의 추대로 관동창의대장(關東倡義大將)에 올랐다. 그리하여 1907년 11월 각도 의병부대를 경기도 양주(楊州)로 집결시켜 13도창의대진소(十三道倡義大陣所)를 결성하고, 군사장 허위(許蔿) 등과 더불어 서울진공작전을 전개하였다.
김창식은 1907년 11월 이인영의진에 참여하여 우군장(右軍將)으로 이인영의 호위를 맡았다. 경기도 양주(楊洲)·포천(抱川) 등지에서 부하 150명을 인솔해 군량미 및 군수품을 모집하는 등의 활동을 하다가 체포되어 유형(流刑) 15년을 받았다. 그 후 1909년 8월 충북 청양(靑陽)에서 이기상(李起商) 등과 의병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1910년 2월 경성공소원에서 강도죄로 징역 7년에 처해져 복역 중 1912년 9월 징역 3년으로 감형, 1913년 출감하였는데, 1914년 대한독립의군부(大韓獨立義軍府)에 참여하였다.
1914년 임병찬(林炳瓚)이 조직한 대한독립의군부는 전국적인 조직을 갖추고 투서운동(投書運動)과 태극기게양운동(太極旗揭揚運動)을 통해 국권회복을 모색하고자 하였다. 1914년 5월 대한독립의군부는 국권의 반환을 요구하는 투서를 전국적으로 발송하고, 동시에 국권의 반환과 일본군의 철병을 요구하는 전화와 태극기를 게양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같은 해 1914년 5월 23일 김창식 등이 체포되면서 대한독립의군부의 조직은 노출되고 말았다. 김창식을 비롯하여 이기영(李起永,李起周)·강봉주(姜鳳周)·이용철(李容轍)·정철화(鄭哲和)·조중구(趙重九)·김현각(金顯珏)·유병심(柳秉心)·윤호(尹浩)·신규선(申奎善)·윤이병(尹履炳) 등이 체포되었다. 이 사건은 국권회복을 목적으로 한 대한독립의군부의 군자금모집사건으로 김창식은 1915년 5월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5년을 받아 경성복심법원에 공소하였으나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平理院裁判所:1908. 6. 6)
- 豫審終結書(京城地方法院 豫審係 : 1915. 3. 4)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 1915. 9. 17)
- 高等警察要史(慶北警察部, 1934) 178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1권 324면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별집 제1집 123~125면
- 遯軒遺稿(林炳瓚) 233~23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