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경남 함안(咸安) 사람이다.
1919년 3월 24일 함안군 칠원면(漆原面)에서 손종일(孫鍾一)·박경천(朴擎天)·윤형규(尹兄珪) 등과 함께 독립만세 시위운동을 계획하고 칠원읍 장터에서 800여명의 군중을 규합, 선도하여 시위를 벌였다. 이들은 4월 3일에도 장터에서 태극기를 높이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800여명의 시위군중과 함께 시위를 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해 5월 20일 부산지방법원 마산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형을 선고받고 공소하였으나, 6월 10일 대구복심법원에서 기각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9. 6. 10 대구복심법원)
- 범죄인명부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304∼30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