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0권(1993년 발간)
경남 양산(梁山) 사람이다.
1919년 3월 17일에서 19일에 걸쳐 동래군(東萊郡) 범어사(梵魚寺) 지방학림(地方學林)의 생도로서 김영규(金永奎)·차상명(車相明)·김봉환(金奉煥)·김상기(金相琦) 등이 주도한 독립만세 시위운동 거사에 참가, 동래읍 장날 시위에 사용할 격문을 작성하여 시위군중에게 배포하고 장터 남문부근에서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만세를 고창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이해 4월 17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형을 선고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2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9권 264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8권 87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189면
- 신원증명서(1977. 2. 28 부산 동래구청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