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3월 경남 동래군(현 부산 동래) 범어사(梵魚寺) 승려 김영규(金永奎)는 같은 승려인 차상명(車相明)·김봉환(金奉煥) 등과 함께 다른 지방에 호응하여 범어사 부속 명정학교(明正學校)와 지방학림(地方學林) 학생들을 동원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기로 하였다.
3월 17일 저녁, 범어사 내에서 양교의 졸업생 송별회가 열렸다. 이 자리에서 김영규는 축사를 한 다음 독립만세 삼창을 선창하고, 졸업생들에게 동래로 나가 만세운동을 펼치도록 권유하였다. 일동은 그 취지에 적극 찬동하여 함께 저녁식사를 한 다음 어둠을 틈타 동래로 잠입하였다.
범어사 승려였던 박영환은 이 계획에 적극 참여하여 3월 18일 밤 양교 학생 수십 명을 중심으로 시위대를 형성하여 동래군(東萊郡) 동래면(東萊面) 서문 부근에서부터 만세시위를 시작, 동래시장을 통과하여 남문까지 행진하였다. 이들은 이튿날에도 만세시위를 벌이기로 결의하였다.
3월 19일 정오경, 이들은 다시 동래경찰서 부근에서 시위를 벌였다. 그러나 일본 경찰의 제지로 주동 학생들이 체포되자, 오후 6시경 재집결하여 동래시장 남문 부근에서 대열을 갖추고 독립만세를 부르며 동래경찰서로 행진하였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4월 22일 부산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1204∼1207면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186∼188면
- 釜山·慶南 三一運動史(社團法人 三一同志會, 1979) 47∼51면
- 判決文(大邱覆審法院, 1919. 5. 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