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충청북도 음성(陰城) 사람이다. 1919년 4월 1일 소이면(蘇伊面) 한천(漢川) 장날을 이용하여 김을경(金乙卿)·이중곤(李重坤)·추성열(秋成烈)·이교필(李敎弼)·이용호(李龍浩)와 함께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이들은 수백명의 시위군중을 이끌고 소이면 사무소로 달려가 당시 면장이던 민병식(閔秉植)에게 같은 민족으로서 독립만세운동에 동참할 것을 호소하여 시위대열의 앞장에 서게 하여 독립만세를 절규 고창하던 중, 김을경과 이중곤이 경찰주재소로 체포되어 가자, 그는 격분하여 뒤쫓아가 주재소의 장지문을 발로 걷어차며 이들의 석방을 강력히 요구하다가 체포되었다. 이해 10월 2일 고등법원에서 징역 1년형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62·63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086·108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