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이응식은 경기도 안성군(安城郡)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을 때 안성군에서도 만세운동이
전개되었다. 안성군은 원래 죽산·안성·양성의 3군이 합쳐진 관계도 있어 독립
만세 시위도 주로 이 3곳이 중심이 되었다.
죽산 지역의 독립만세는 안성읍보다 더욱 격렬했다. 1919년 4월 1일 이응식은이기훈(李起薰), 최창달(崔昌達) 등과 함께 안성군 이죽면(二竹面) 두현리(斗峴
里)에서 도로 개수 부역에 나온 인부들과 독립만세시위를 시작했다. 이들은 윤
상구(尹商求), 조원경(趙元京) 등 주민 수백명과 함께 이죽면(二竹面) 죽산리(竹
山里)에 있는 이죽면사무소와 죽산주재소까지 만세시위 행진을 했다.
다음날 4월 2일은 죽산 장날이었다. 죽산리에 사는 문재홍(文在弘)은 이날 죽
산시장에 모여든 1,000여명의 군중과 함께 만세시위를 일으켰고, 주재소를 향해
시위행진을 시작했다. 시위대는 주재소 앞에 와서 일제히 독립만세를 부르고
행진을 계속했다. 이응식 역시 이날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시위 후 체포된 이응식은 6월 6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항고했으나, 7월 18일 경성복심법원과 9월 27일 고등법원에서
연달아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高等法院:1919. 9. 27)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9. 6. 6)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7. 18)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5집 417면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173~174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