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기도 이천(利川)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30일 이천군 마장면(麻長面)에서 오천(午川) 장날을 기하여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평소 식민지 통치의 부당성에 대하여 깊게 인식하고 항일의식을 키워 오던 그는 3·1운동이 전국으로 확산되는 상황에서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평소 뜻을 같이하던 이창호(李昶鎬) 등과 협의하여 만세운동 계획에 착수하였다. 이들은 거사일을 사람이 많이 모이는 3월 30일 오천 장날로 정하고 각 마을마다 사발통문을 돌렸다. 또한 거사에 필요한 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 제작하면서 거사에 만전을 기하였다.
그리하여 거사 당일인 3월 30일 오천 장터에는 3백여 명의 면민이 모인 가운데 독립선언식이 거행되었고, 박종설의 주도로 면사무소 앞에서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이에 일경이 시위 해산을 강요하면서 무자비하게 총격을 가해옴으로써 시위대가 해산되는 가운데 박종설은 만세시위행렬의 선두에 서서 활약하다가 현장에서 붙잡혔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5월 31일 경성지방법원 여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5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이천의 의병활동과 3·1운동(이천문화원, 1987) 106·10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