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강원도 홍천(洪川) 사람이다.
홍천군 동면 성수리(東面 城壽里)는 민씨(閔氏) 가 집단부락을 형성한 유교의 고장으로 4월 1일 홍천읍의 만세시위와는 별도로 독립운동계획이 추진되고 있었다..
그는 당초 서울에 올라가 광무황제(光武皇帝)의 국장(國葬)에 참가하고 돌아와서 3월말경 민준기(閔駿基)와 같이 태극기를 제작하면서 만세운동을 준비해 오던 중 홍천읍의 운동에 이어 1919년 4월 2일 면소재지인 속초리(束草里)로 집결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3일까지 이틀 동안 계속된 이 만세시위에는 2일 새벽부터 군중이 모였고, 성수리 길목에서 홍천읍으로 통하는 길을 막아 만세운동의 정보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았으므로 이날의 만세시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다음날 4월 3일에는 동면(東面)에서 홍천읍으로 시위행진하여 헌병분견소에 검거된 사람을 석방하라고 요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4월 3일 상황이 달라졌다. 동면 성수리에서 800여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할 무렵 뜻밖에 일헌병과 수비대가 출동해서 시위군중과 일헌병과의 격투가 벌어졌다.
이때 그는 일헌병의 총을 빼앗으려 달려들다 일헌병이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 韓國獨立運動史 (國史編纂委員會) 第2卷 253·254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568面
- 每日申報(1919. 4. 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