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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6339
성명
한자 閔丙肅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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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1990 훈격 애국장
1919. 4. 3 강원도(江原道) 홍천군(洪川郡) 동면(東面) 성수리(城壽里)에서 800여군중(餘群衆)과 함께 독립만세(獨立萬歲)고창(高唱)하며 시위(示威)개시(開始)할 무렵 일 헌병(日憲兵)격투(擊鬪)가 벌어져 왜병(倭兵)(銃)을 빼앗으려 하자, 옆의 왜병(倭兵)(銃)을 쏘아 현장(現場)에서 순국(殉國)한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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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창(高唱) : 노래, 구호, 만세따위를 큰 소리로 부르거나 외침

 

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강원도 홍천(洪川) 사람이다.

홍천군 동면 성수리(東面 城壽里)는 민씨(閔氏) 가 집단부락을 형성한 유교의 고장으로 4월 1일 홍천읍의 만세시위와는 별도로 독립운동계획이 추진되고 있었다..

그는 당초 서울에 올라가 광무황제(光武皇帝)의 국장(國葬)에 참가하고 돌아와서 3월말경 민준기(閔駿基)와 같이 태극기를 제작하면서 만세운동을 준비해 오던 중 홍천읍의 운동에 이어 1919년 4월 2일 면소재지인 속초리(束草里)로 집결하여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3일까지 이틀 동안 계속된 이 만세시위에는 2일 새벽부터 군중이 모였고, 성수리 길목에서 홍천읍으로 통하는 길을 막아 만세운동의 정보가 밖으로 새어 나가지 않았으므로 이날의 만세시위는 순조롭게 진행되었으며, 다음날 4월 3일에는 동면(東面)에서 홍천읍으로 시위행진하여 헌병분견소에 검거된 사람을 석방하라고 요구할 계획이었다.

그러나 4월 3일 상황이 달라졌다. 동면 성수리에서 800여명의 군중과 함께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시위행진할 무렵 뜻밖에 일헌병과 수비대가 출동해서 시위군중과 일헌병과의 격투가 벌어졌다.

이때 그는 일헌병의 총을 빼앗으려 달려들다 일헌병이 쏜 총에 맞아 현장에서 순국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韓國獨立運動史 (國史編纂委員會) 第2卷 253·254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568面
  • 每日申報(1919. 4. 6)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민병숙 - 강원 홍천(洪川) 홍천군 동면 만세시위
본문
1873년 6월 15일 강원도 홍천군(洪川郡) 동면(東面) 성수리(城壽里)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강원도 홍천군 동면 만세시위에 참여하였다가 일제 헌병에게 희생되었다.1919년 3월 3일, 서울에서 고종(高宗)의 장례식에 참여하여 만세운동을 목격하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강원도 홍천군 동면에서는 3월 말부터 민씨 가문을 중심으로 만세시위를 준비하였는데, 이때 적극 주도하였다. 조카 민준기(閔駿基)와 함께 마을 서당 교사 민두식(閔斗植)의 집에서 태극기를 만들며 만세시위를 추진하였고, 속초리(束草里)의 허혁(許爀)과도 뜻을 모았다. 동면 내 삼현리(三峴里)·방량리(方良里)·개운리(開雲里)·월운리(月雲里)·후동리(後洞里)·덕치리(德峙)·신봉리(新峯里) 등에도 주민을 동원하기 위한 연락을 취하였다. 그러던 중 4월 1일 홍천면(洪川面) 신장대리 장터에서 만세시위가 일어난 소식을 듣고, 4월 2일 면 소재지인 속초리에서 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결정하였다.4월 2일 새벽부터 1,000여 명의 시위 군중이 속초리로 몰려들었다. 성수리 길목에서는 홍천면으로 통하는 길을 막아 시위 정보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유의하였다. 마침 면장이 사촌형 민병선(閔丙善)였기 때문에 그를 통해 면사무소에 커다란 태극기를 내걸었다. 민병찬(閔丙讚)이 “대한독립, 우리 대한 만세”라고 선창하자 전 군중이 소리 높여 독립만세를 불렀고, 면장과 면서기도 함께 독립만세를 외쳤다. 이날 오후, 시위대는 4월 1일에 일어난 홍천면 시위로 붙잡혀간 사람들의 석방을 요구하기 위해 홍천면에 있는 헌병분견소로 향할 계획이었다. 이때 면장 민병선이 나서 이미 오후이니 내일 아침에 다시 모여 가자고 회유하여 시위대는 저녁 무렵 해산하였다.4월 3일 날이 밝자 동면 내 각 마을 주민들이 홍천면으로 가기 위해 다시 속초리로 모여들었다. 시위대가 출발하려 하자 홍천면 방면에서 일본 헌병과 수비대가 나타나 가로막았다. 그들은 홍천군청 직원 허경선(許慶善)·정광세(鄭光世)의 인도를 받으며 속초리에 들어섰다. 전날 동면 면사무소에서 시위대가 홍천면으로 가려 했으며 3일에 다시 모이기로 한 사실을 누군가가 홍천군청에 알렸던 것이다. 이윽고 면사무소에서 마주친 시위 주도자들과 일제 군경 사이에 격투가 벌어졌다. 이때 헌병 상등병 이케다(池田)와 총을 뺏으려고 몸싸움을 벌이다가 옆에 있던 일본군이 쏜 총에 맞아 그 자리에서 사망하였다. 이에 형인 민병태(閔丙台)가 동생의 죽음에 격분하여 달려들었으나 역시 일본군의 총에 쓰려져 병원으로 옮겼으나 얼마 후 사망하였다. 이 소식에 격분한 시위대는 면사무소 건물을 파괴하는 등 격렬하게 저항하였으나 결국 해산하였고, 마을에서 수십 명이 붙잡혀갔다.1965년 홍천읍 유지들이 동면 성수리에 ‘순국3·1열사문공휘병태병숙충혼비’를 세워 이들 형제의 애국혼과 희생을 기리고 있다.대한민국 정부는 199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묘소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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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내산재 강원도 홍천군

관련 현충시설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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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비석 홍천 3·1운동 기념비 강원도 홍천군
2 비석 순국 3·1열사 충혼비(홍천) 강원도 홍천군
3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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