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강원도 영월(寧越) 사람이다.
1919년 당시 영월군 양변면 금마리(兩邊面 金馬里) 박씨문중 마을에 살았는데, 양변면장을 지낸 박수창(朴受昌)은 이마을의 실질적인 주관자였고 그의 아버지였다.
독립만세운동의 계획은 그의 집에서 이용헌(李龍獻)·이병익(李炳翼)·박수영(朴受永)·박재호(朴在鎬) 등에 의해서 수립되었으며 박춘희(朴春喜)·김창진(金昌鎭) 등이 태극기를 만들었다.
이들은 1919년 4월 20일 영월군수가 이 마을에 강연하러 온다는 소식을 듣고 그날을 만세시위 날짜로 결정한 후 아래 윗마을을 다니면서 만세연명부(萬歲連名簿)를 작성하였는데, 4월 20일 군수가 오지 않고 다음날 21일에 오게 되었다.
마침 4월 21일 주천 장날이었다. 이들은 장꾼 70여 명을 규합하여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거리를 시위하다가 이날 저녁 급파된 헌병에게 총과 몽둥이로 구타당하며 붙잡혔다.
그는 이해 5월 19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으며 7월 7일 경성복심법원을 거쳐 9월 18일 고등법원에서 징역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5. 19 京城地方法院)
- 判決文(1919. 7. 7 京城覆審法院)
- 判決文(1919. 9. 18 高等法院)
- 韓國民族運動史料 (3·1運動篇) (國會圖書館) 144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2卷 595面
- 獨立運動史資料集(國家報勳處) 第5輯 964∼967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