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9권(1991년 발간)
경북 성주(星州) 사람이다.
서울에서의 3·1독립운동에 이어 민족의 독립을 요구하는 함성이 전국적으로 퍼져 우렁한 만세시위가 일어나자 이곳 성주군 유림들도 움직이기 시작하였다.
그는 성주군 초전면(草田面)에 살고있었으며 1919년 4월 2일 성주읍 장날을 기하여 봉기한 이곳의 만세시위운동에 주동인물로 활동하였다.
이날의 만세시위는 이기정(李基定)이 전국 각지의 독립운동 봉기상황을 알게 되면서 송인집(宋寅輯)과 더불어 군내 양반을 규합하여 독립운동을 협의함으로써 본격적인 의거로 발전하였다.
그는 1919년 4월 2일 성주읍 장터에서 독립만세시위에 주동자로 참가하여 활동하였으며 파리강화회의(巴里講和會議)에 제출하는 파리장서(巴里長書)에 서명하는 등 항일활동을 하다가 일경에 붙잡혔다.
그후 5월 2일 대구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형을 선고받아 1년여의 옥고를 치렀다.
그후에도 그는 1927년 신간회(新幹會) 성주지회(星州支會)를 조직하고 독립사상을 고취하였으며 군자금 모금 등의 활동을 전개하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1919. 5. 2 大邱地方法院)
- 3·1運動實錄(李龍洛, 1969) 790·791·1050∼1059面
- 韓國獨立史(金承學) 下卷 342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465∼468面
- 獨立運動實錄(慶北版) 197·198面