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4권(2000년 발간)
경북 영일(迎日) 사람이다.
1919년 3월 11일 포항읍 장날을 계기로 독립만세운동을 주도하였다.
평소 항일의식이 투철하였던 이봉학은 전국 각지에서 만세시위가 전개되고 있음을 전해 듣고 포항동(浦項洞)에 사는 송문수(宋文壽)·최경성(崔景成)·장운환(張雲煥)·이기춘(李起春) 등과 비밀모의를 갖고 독립만세운동을 일으킬 것을 결의하였다. 이들은 3월 11일 포항읍 장날을 거사일로 정하고 태극기 제작과 독립선언서를 등사하는 등 거사 준비를 차
질없이 진행시키던 중 일경에 발각되어 인쇄 준비물 등을 압수당했을 뿐 아니라 주도인물들은 피신했다가 검거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소식이 포항읍에 알려지자, 3월 11일, 12일에 걸쳐 수백 명의 군중이 장터에 집합하여 만세를 불렀고, 이날 밤에는 북평도 교회 교인 수백 명이 교회에 집합하였다가 읍내로 나와 만세시위를 전개되었다.
그는 이 일로 붙잡혀, 1919년 4월 29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에서 징역 5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9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3·1運動實錄(李龍洛, 1969) 734∼737面
- 大韓獨立抗日鬪爭總史(大韓獨立抗日鬪爭總史編纂委員會) 下卷 681面
- 獨立運動史(國家報勳處) 第3卷 442面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刑事事件簿
- 受刑人名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