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장운환은 경북 영일군(迎日郡) 포항면(浦項面)에서 독립만세운동을 계획하고 동지를 획득하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경북 포항읍(지금 포항시)의 독립만세시위는 3월 11일로 정해졌다. 송문수(宋文壽)는 경북 대구에서 3·1운동이 전국적으로 일어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3월 9일 거주지인 포항으로 돌아왔다. 이때 장운환과 이기춘(李起春), 이봉학(李鳳學), 최경성(崔景成) 등은 마중을 나가서 대구의 시위 상황을 물어보았다. 송문수는각지에서 만세운동을 하고 있는 상황을 전해주었고, 이들은 비밀히 거사 준비를 시작했다. 거사일은 3월 11일 포항읍 장날로 약정되었다. 그러나 불행히도 일경에 탐지되어 인쇄 준비물을 압수당하고 주동 인물들은 피신하고 있다가 검거되고 말았다. 이 소식이 포항읍에 알려지자 3월 11일, 12일에 걸쳐 수백 명의 군중이 장터에 집합하여 만세를 부르고 시위하다가 일경의 총검의 탄압으로 해산당하고 이날 밤에는 북평도 교회 교인 수백 명이 교회에 집합하였다가 시가로 나와 만세시위를 벌렸다. 이에 놀란 일경들이 총검으로 탄압하여 군중은 다시 해산하지 않을 수 없었다.
체포된 장운환은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4월을 받았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3년에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 刑事事件簿·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442면
- 判決文(大邱地方法院 慶州支廳:1919. 4. 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