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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공자정보

수형기록
관리번호 31567
성명
한자 朴文泓
이명 없음 성별
생년월일 사망년월일
본적
액자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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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상정보

수형기록
운동계열 3.1운동 포상년도 1995 훈격 건국포장
1919. 3. 12 경북(慶北) 경주군(慶州郡)에서 박내영(朴來永), 윤기효(尹琪涍)등과 함께 주동이 되어 동월(同月) 13일 경주(慶州)장날을 이용, 만세운동을 일으키기로 결정하고 자신의 집에서 태극기 300개를 만들어 당일 아침에 배포하다가 피체(被逮)되어 징역 10월을 받은 사실이 확인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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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2권(1996년 발간)

경북 경주(慶州) 사람이다.

그는 1919년 3월 13일 경주 읍내 장날을 이용하여 박내영(朴來永)·윤기효(尹琪涍) 등과 함께 주동이 되어 만세운동을 일으키려다가 거사 직전 발각됨으로써 붙잡혔다.

경주 읍내의 만세운동은 경주 노동리(路東里) 교회의 영수인 박문홍 등이 3월 9일에 경산(慶山)의 기독교 목사 김기원(金基源)으로부터 3월 8일의 대구 만세운동 소식을 들으면서 구체화되었다. 이에 박문홍은 목사 박내영(朴來英)·윤기효(尹琪涍) 등과 함께 만세운동의 계획을 세우며 동지를 포섭해 갔다.

이들은 우선 믿음있는 청년 5, 6인을 포섭하여 3월 11일과 12일 밤 두 차례에 걸쳐 노동리교회에서 모임을 갖고 선언서와 태극기를 인쇄·제작하였다. 이 때 태극기는 3월 12일 밤 박문홍이 책임을 맡아 자신의 집에서 3백여 개를 만들었으며, 3월 13일 새벽을 기해 각처에 배포하였다.

그런데 태극기의 배포 사실이 일제의 경계망에 포착되면서, 일제 경주경찰서에서는 3월 13일 새벽에 4대로 편성한 기동대를 투입하여 만세주동자들을 체포하였다. 이로써 박내영은 거사를 불과 몇 시간 앞두고 일경에 붙잡히고 말았으며, 3월 13일의 읍내 장터에서의 만세시위도 불발에 그치고 말았다.

그러나 이러한 만세운동에의 의지는 군중에게 계승되면서 읍내 작은 장날인 3월 15일에 수천여 명의 군중들은 박내영 등이 제작한 태극기를 흔들며 만세시위를 전개하였다.

그는 이 일로 1919년 4월 15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아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5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제3권 443면
  • 신분장지문원지(경찰청)
  • 고등경찰요사(경북경찰부) 39면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도움말
한국독립운동 인명사전
순번 성명 이명 출신지 관련사건
1 박문홍 - 경북 경주(慶州) -
본문
1887년 4월 8일 경상북도 경주군 부내면(府內面) 노서동(路西洞)에서 태어났다. 1919년 당시 경주 노동리교회(路東里敎會, 현 경주제일교회)의 집사였다. 1919년 3월 13일 경주 읍내 장날을 이용한 만세시위 계획을 주도하였다.박래영(朴來英) 목사를 비롯한 교회 신도 김학봉(金學鳳), 조기철(曺基哲) 등과 파리강화회의에서 의결된 민족자결에 따라 다른 나라의 지배를 받는 약소국이 독립할 수 있다는 희망을 갖게 되었다. 또 신문을 통해 전국 각지에서 독립만세운동이 일어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고 독립의 시기가 왔다고 인식하였다. 이 시기 경산군(慶山郡) 고산면(孤山面) 사월리(沙月里)에 사는 김기원(金基源) 목사가 경주 노동리교회를 방문하여 대구 지역의 만세시위에 대해 자세히 전한 후 경주에서도 거사를 일으킬 것을 권유하였다.3월 12일 노동리교회당에서 박래영 목사를 비롯한 교회 신도들과 회합하여, 3월 13일의 경주 읍내 장날을 이용하여 군중을 규합하여 태극기를 흔들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는 만세시위를 일으키기로 결의하였다.거사를 결정한 후 자신의 집에서 군중에게 나눠줄 태극기 약 360개를 제작하였다. 최수창(崔壽昌)·이승태(李承泰)·김학봉·조기철도 태극기 제작에 참여하였다. 이때 태극기 배부와 운동 시각 및 장소 공지 등 다음 날 있을 거사의 진행 방법을 논의하였다.다음 날 새벽부터 김천근(金千根)·전성필(全晟弼)·김성길(金成吉)·최성렬(崔成烈) 등을 각 마을로 보내 태극기를 배부하도록 하였다. 그러나 거사 직전 경주경찰서의 경계망에 포착되어 다른 주도자들과 함께 붙잡혔고 읍내 장터의 만세시위도 불발되었다.1919년 4월 15일 대구지방법원 경주지청에서 이른바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0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대한민국 정부는 1995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수형기록

도움말
수형기록
순번 종류 죄명 처분(주문) 판결기관 판결일 제공
1 판결문 보안법위반 징역 10월 대구지방법원 영덕지청 1919-04-15 국가기록원

묘소정보

도움말
묘소정보 1
묘소구분 소재지
국내산재 울산광역시 울주군

관련 현충시설 정보

도움말
관련 현충시설 정보
순번 종류 시설명 소재지
1 3·1독립운동 기념탑 서울특별시 중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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