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3권(1987년 발간)
1919년 4월 2일의 통영(統營) 장날을 이용하여 독립만세운동을 주동하였다. 그는 이날 오후 3시 30분경, 고채주(高采周)·김영중(金永仲) 등과 함께 장터에 모인 3천여명의 시위군중의 선두에 서서 독립만세를 선창하였다. 이에 장꾼들이 호응하여 독립만세를 외치게 되어 장터는 갑자기 독립만세소리로 진동하였다. 이때 일본 경찰이 출동하여 해산을 명령하였다. 그러나 그는 이에 굴하지 않고 시위군중을 이끌고 만세시위를 계속하였다. 그러자 일본 경찰은 소방 펌프로 시위군중에게 물을 뿜어대는 등 무력을 행사하였다. 그러나 그는 모자를 벗어 흔들며 계속 독립만세시위를 주도하다가 체포되었으며, 이해 5월 13일 대구(大邱)복심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리어 1990년에 건국훈장 애족장(1983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판결문(1919. 5. 13 대구복심법원)
- 독립운동사(국가보훈처) 3권 259면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5권 1238·1239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