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6권(2006년 발간)
1919년 3월 그는 박성백(朴成伯)·유동환(柳東煥)·전영록(全榮祿)·유만수(柳萬壽) 등 동지들과 함께 고향 경기도 진위군(振威郡) 북면(北面, 현 평택시)에서 만세운동을 전개하기로 결의하고 미리 태극기를 제작하는 등 사전 준비를 하였다.
3월 31일 오후 4시경 그는 동지들과 미리 제작한 태극기 30매를 지니고 4백여 명의 동리 사람들을 권유하여 시위현장으로 나아갔다. 그는 군중의 선두에 서서 태극기를 휘두르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며 북면 면사무소와 경찰관주재소 등지를 행진하고 오후 6시경까지 만세시위를 주도하였다.
이로 인해 일경에 체포되어 1919년 8월 7일 고등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1년 6월을 받고 옥고를 치렀다.
정부에서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4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判決文(京城覆審法院, 1919. 6. 21)
- 判決文(高等法院, 1919. 8. 7)
- 독립운동사자료집(국가보훈처) 제5권 406∼407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