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21권(2014년 발간)
김순갑은 경기도 양주군(楊州郡) 장흥면(長興面)에서 독립만세운동에 참여하
였다가 체포되어 옥고를 치렀다.
전국에서 만세운동이 벌어질 때 양주군에서도 곳곳에서 만세시위운동이 벌어졌
다. 양주군 장흥면은 조그마한 산 속에 있으면서 옛날 서산(瑞山)이라는 곳으로,
이때에도 이씨 왕조시대의 환관(宦官)이 많이 살고 있어 양반과 상놈의 사회 신분
계급이 오랫동안 존속했던 곳이다. 장흥면 교현리(橋峴里)에서는 이회명(李會明)
등이 주동이 되어 시위가 진행되었다. 1919년 3월 28일 저녁 8시경에 동리 주점
앞에 수십명이 모여 대한 독립만세를 부르며 시위를 시작했다. 다음날 29일에도
이른 아침에 동민들이 모이자 이회명은 미리 준비해 두었던 태극기를 들고 선두에
서 시위행렬을 인도하여 장흥면 면사무소로 향하였다. 여기에는 이미 300여명의
군중이 모여 있었는데 이 군중의 주도 인물은 김순갑과 정윤삼(鄭允三)·김완순(金
完順) 등이었다. 김순갑은 태극기를 흔들며, 모여 있는 교현리 주민들의 선두에서서 면사무소로 행진했다. 면사무소 앞에서 이회명이 인솔한 집단과 합하여 시위
대는 크게 조선독립만세를 불렀다.
시위 후 체포된 김순갑은 5월 22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소위 보안법 위반으로
징역 8월을 받고 항소하였다. 그러나 6월 25일 경성복심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
었고, 1920년 2월 26일에 서대문감옥을 출옥하였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12년에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9. 5. 22)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6. 25)
- 身分帳指紋原紙(警察廳)
- 독립운동사(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1971) 제2권 146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