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록정보: 독립유공자공훈록 17권(2009년 발간)
경기도 양평군(楊平郡) 청운면(靑雲面)에서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고, 이로 인해 옥고를 치렀다.
양평군에서는 3월 10일 서종면 문호리에서 시위가 시작된 이후 3월 23일 청운면 용두리에서 천도교인들이 시위를 전개하였다.
민주혁은 1919년 3월 23일 양평군 청운면에 거주하는 천도교인 신재원(申在元)·정경시(鄭慶時)가 청운면의 용두리 장날에 독립만세시위를 일으킬 것을 계획하고 참여를 권유하자 동참하였다. 그는 동지들과 같이 여물리 무명교 아래에 가서 ‘조선독립기(朝鮮獨立旗)’라고 쓴 깃발을 마련한 후, 용두리 시장에서 150여 명의 시위대와 함께 ‘조선독립기’를 앞세우고 독립만세를 고창하면서 시위를 전개하였다.
시위 후 체포된 민주혁은 1919년 4월 24일 경성지방법원에서 징역 1년 6월을 받았고, 경성복심법원과 고등법원에서 상고가 기각되었다.
정부는 고인의 공훈을 기려 2006년에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 독립운동사자료집(독립운동사편찬위원회) 제5집 492~493면
- 判決文(京城地方法院:1919. 4. 24)
- 判決文(京城覆審法院:1919. 5. 24)
- 判決文(高等法院:1919. 6. 21)